- 최선을 다한 누나의 슬픈 이야기
해가 갈수록 명절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여행을 간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양친이 모두 돌아 가시면 그럴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부모님중 한 분이 노인병원에 누워 계시는데도
간병인에게 맏겨 놓고 간다고 하니 안타깝습니다
사지가 뒤틀리고 굳어 있어도
의식은 뚜렷 하신 분이 많습니다
숨이 멎을때 까지 얼마나 자식들이
그리고 손자가 그리우실까요
예전에 들은 얘기입니다
가난한 집안에 장녀로 태어나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남의 집 식모로 팔려가
몇 푼되지도 않은 돈을 받고 살다가
조금 머리가 커지자
봉제공장에서 기술을 배우고자
시다부터 시작해 잠도 못 자면서
죽어라고 일하던 누님이 계셨지요
한창 멋을 부릴 나이에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 하나 사 쓰는것도 아까워
돈을 버는 대로 고향 집에 보내서
동생들 뒷 바라지를 했었답니다
그 많은 먼지를 하얗게 머리에 뒤집어 쓰고
몸은 병 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소처럼 일해서 동생 셋을
대학까지 보내서 제대로 키웠지요
이 누나는 시집 가는 것도 아까워
사랑하는 남자를 눈물로 보내기도 했지만
이를 악물고 숙명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늙어 갔답니다
그러다 몸이 이상해서
약국에서 약으로 버티다 쓰러져
동료들이 업고 병원으로 데리고 갔는 데
위암 말기라는 얘기를 듣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수술을 해서
위를 잘라 내면 살수도 있다고 했답니다
누나는 미국에 살고 있는
큰 동생에게 전화를 합니다
동생아 내가 수술을 해야 하는데
3000만원 정도 든단다
동생이 골프를 치다 말고 말합니다
"누나 내가 30만불이 어딨어"
"누나는 알았다 미안하다"
힘 없이 전화를 끊습니다
둘째 동생에게 전화를 합니다
둘째동생은 변호사입니다
동생아 수술을 해야 하는 데
돈이 없네 어떻하냐
둘째가 말합니다
"누나 요즘 수임이 없어서 힘드내" 하고
바로 전화를 끊어 버립니다
막내 동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사정 얘기를하자 막 일하는 동생이
부인과 함께 단숨에 뛰어 왔습니다
"누나 집 보증금을 빼 왔어.
이걸로 수술합시다."
누나는 막내의 사정을 빤히 알고 있어서
그냥 두 부부를 부둥켜 안고 울기만 합니다
수술하기 전날 밤 보호자 침대에서
잠들은 올케를 바라보던 누나는
조심스레 옷을 갈아 입고
안개 속으로 걸어 갔습니다
횡단보도에 서있던 누나는
자동차 불빛 속으로 뛰어 들었지요
그렇게 누나는 한 많은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맙니다
올케는 꿈속에서 조용히 미소를 지으면서
어깨를 토닥이는 누나의 손길이 느껴져
놀라 깨어보니 누나의 자리가
비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빈침대 위에 놓여 진 편지를 봅니다
몆줄의 글이 눈에 들어 옵니다
"막내야 올케 고맙다"
"죽어서도 너희들을 지켜주마"
"내가 그나마 죽기 전에 보험을 들어 놔서
이거라도 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입니다
그나마 누나가 죽고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두 동생들은 누나의 사망보험금이
상당하다는 걸 알고막내를 협박합니다
"똑같이 나누지 않으면 가만 있지 않겠다
법적인 모든것을 동원하겠다."
두 형수들과 함께 욕하며 위협을 가 합니다
결국은 법정으로 갔습니다
막내는 줘 버릴까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나의 핏값을 두형으로 부터
지키고 싶었던 막내는
결국은 소송을 시작 합니다
소식을 들은 친구가 변론을 맏아 주기로 했습니다
몇개월의 소송 끝에 판결을 합니다
판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판결문을 읽어 내려 갑니다
그리고 누나 휴대폰의 문자를 읽어주자
두형들은 두말않고 밖으로 나갑니다
삶이 그렇더군요
모두 자기 역할이 따로 있더군요
이렇게 불쌍하게 삶을 마감한 그누님은
성자같은 삶을 살다가
그렇게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죽어 갑니다
살아 있을 때
孝를 다 하고
義를 다 하고
禮를 다 하고
정성을 다 하고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60 ~70년대 산업화를 이끌 던
우리의 누이들 형님들
그리고 썩어 문드러져 거름이 되어 주신 부모님 세대들께
꼰대라고 불러서는 안 되는 이유 이기도합니다
그들은 가시고기처럼
자신의 알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었던
장렬한 전사들이었습니다.
이연실 / 찔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