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가도 노래는 남아
당신의 이 노래를 당신에게 보냅니다.
비봉산 양지쪽에 진달래 피고
진주 남강 백사장에 물새가 울 때
그 님을 부여잡고 몸부림 치며
울며 헤진 젊은 날의 푸른 그 추억
그 추억을 못 잊어서 부르던 노래
바람에 태워 구름에 태워 보냅니다.
추억의 소야곡 /남인수 노래
1 ) 다시 한번 그 얼굴이 보고 싶어라 몸부림치며 울며 떠난 사람아 저 달이 밝혀 주는 이 창가에서 이 밤도 너를 찾는 이 밤도 너를 찾는 노래 부른다
2 ) 바람결에 너의 소식 전해 들으며 행복을 비는 마음 애달프고나 불러도 대답 없는 흘러간 사랑 차라리 잊으리라 차라리 잊으리라 맹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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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인수의 일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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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수의 데뷔 곡 '눈물의 해협' SP음반에 들어있는 가사지에 있는 사진이다. 남인수의 데뷔 때의 앳띤 모습을 볼 수 있는 귀한 사진.
1939년 무렵 오케연주단의 모습
오케 연주단 지방공연 사진.1번- 남인수 ,2번- 고복수, 3번- 이화자,4번- 이난영, 5번- 김해송, 6번- 김정구, 7번- 이철- 오케 연주단 단장- 오케레코드사 사장, 8번- 손목인, 9번- 이은파, 10번- 장세정, 11번- 김용호
오케레코드 1941년 7월 신보 목록에 실린 남인수 사진.
오케레코드 '안개 낀 상해' 가사지에 실린 남인수 사진.
남인수의 고향인 진주 촉석루 아래에서 찍은 사진 맨 왼쪽이 남인수, 오른쪽에서 두번째는 작사가 구완회 맨 오른쪽이 작사가 박영호
작곡가 이용준(왼쪽), 남인수(오른쪽), 미상
백난아(당시 19세, 왼쪽)과 남인수 부부 (중앙- 남인수, 오른쪽- 김은하) 가 일본 전국 순회공연 중 분장실에서 기념으로 촬영한 사진 김은하는 당대 한국 무용계의 1인자였다.
조선악극단 멤버들의 사진 앞줄 왼쪽 부터 이난영, 서봉희, 이화자, 맨 끝이 단장 이철 가운데줄 왼쪽 부터 이봉룡, 남인수 뒷줄 두번째 부터 엄재근, 송달협, 김정구 지휘봉을 든 사람이 손목인
1940년 남인수의 눈오는네온가 광고 사진
40년대 말 이난영, 장세정, 김정구와 국도극장에서.
군예대 시절. 앞줄 왼쪽이 남인수, 그 옆이 가수 금사향이다.
50년대 시민회관 공연사진- 맨 왼쪽이 이인권, 왼쪽에서 두 번째가 고복수 왼쪽에서 세번째가 남인수이고, 네번째가 김정구 이다.
50년대 중반 작곡가 손석우와 함께 중앙극장 앞에서 찍은 사진
50년대 중반- 작곡가 이재호와 함께 찍은 사진.
50년대 중반- 태평양 가극단의 포스터이다. 정중앙이 남인수
50년대 극장 포스터이다. 가요계 황제-남인수, 가요계 여왕- 신카나리아 모던가수- 고운봉, 오리엔트 전속- 김용태, 가요계의 호프- 김백희 등의 광고문구가 보인다.
57년경 남인수
1958년 국도극장 공연에서- 앞줄 외쪽부터 영화배우 김지미, 이난영 뒷줄 왼쪽부터 계수남, 남인수, 영화배우 이민, 고운봉, 김선영.
남인수의 병간호를 하고 있는 이난영.
50년대 말 남인수와 이난영
뒷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장동휘, 일곱번째가 최병호 앞줄 왼쪽부터 손석봉, 남인수, 황금심, 고복수, 박진(전 국립극단장), 한 사람 건너 최남용
앞 줄 외쪽부터 남인수, 신카나리아, 황금심, 고복수 57년 고복수 은퇴 공연 때 찍은 사진
남인수 친필문서- 59년 가수협회장이던 남인수가 반야월에게 보내는 편지
1960년 현 남인수 기념사업회 회장 신해성과 함께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