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립동 이야기
왕이 화가 났다.
인재를 골라 뽑아 평양감사로 내려보내도
보내는 족족 주색에 빠져 정사를 강 건너 불 보듯 하니
평양감영의 기강은 흐트러지고 백성들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다.
평양감사를 홀리는 여우는 부벽관의 홍엽이라는 기생이다.
왕은 믿을 신하가 없어 참판으로 있는 부마(왕의 사위)를 암행어사로 임명,
불문곡직 국기를 문란케 한 기생 홍엽의 목을 베라는 명과 함께
- 평양으로 내려보냈다.
몇날 며칠 말을 타고 와 평양이 가까워졌을 때
늦가을 토끼 꼬리만한 날이 저물었다.
부마는 떨어진 갓에 기운 두루마기 차림으로 변장하고
고갯마루의 조그만 주막에 들어가 하룻밤 유숙하기를 청해
- 객방에 보따리를 풀었다.
뜨뜻한 객방에서 쇠고기국에 밥을 말아 먹고
- 막걸리를 한잔 마시고 나니 온몸이 쑤셨다.
상을 들고 나가며 주모가 물었다.
"손님, 먼 길을 오신 모양인데 시동을 들여보내 팔다리를 주물러 드릴까요?
엽전 한닢 던져 주면 됩니다요."
"그것 참, 내가 바라던 바네."
초립을 쓴 예쁘장한 시동이 사뿐히 방에 들어왔다.
대야에 따뜻한 물을 담아 와 부마의 발을 씻기며
- 발가락 하나하나를 주무르는데
박차에 끼었던 발이 시원하게 풀어졌다.
종아리를 주무르고 허벅지를 주무르는데
이상하게도 부마의 하초가 뻐근해졌다.
부마가 물었다.
"너는 남자아이가 어째서 손이 그렇게 작으냐?"
녀석은 대답은 않고 웃기만 했다.
생긋이 웃는 얼굴은 계집 모습을 빼다 박았다.
부마의 허벅지를 살살 주무르다가 곧추선 하초를 슬쩍슬쩍 건드렸다.
부마는 깜짝 놀랐다.
'내가 남색 성향이 있는 걸까.'
초립동을 자세히 보던 부마는 또다시 놀랐다.
초립동의 가슴이 솟아오르고 엉덩이가 부풀어 오른 걸로
봐 남장 여인이 틀림없었다.
부마가 초립을 벗기자 삼단 같은 머리가 흘러내렸다.
"너는 어찌하여 계집이 남장을 해 뭇사람을 속이느냐?"
"점잖은 선비는 계집한테 안마 받는 걸 마다하고,
짓궂은 손님은 겁탈하려 하기에 남장을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처음 들어 보는 그녀의 목소리는 옥구슬이 구르는 것처럼 청아했다.
그녀는 호롱불을 끄더니 부마의 돌덩이 같은 양물을
입 속에 넣어 온갖 재주를 다 부렸다.
사십 평생에 이런 희열은 처음이라
- 부마는 숨이 넘어갈 듯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홍두깨 같은 공주를 데리고 사느라 첩살림 한번, 기생집 외도 한번 못해 보고
메마른 세월을 보내던 부마는 전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이튿날 새벽, 부마는 "볼일을 보고 다시 너를 찾을 테니
꼼짝 말고 이 집에 있으렷다." 명하고는
날이 새자 평양감영에 들이닥쳐
- "암행어사 출두!"를 외치고 홍엽을 잡아 오라 일렀다.
오랏줄에 묶여 와 꿇어앉아 있는 홍엽을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얼굴을 들라!"
눈물이 가득 고인 그녀는 어젯밤 남장 여인 바로 그녀였다.
부마가 암행어사로 자신의 목을 치러 온다는 정보를 진작에 얻어
길목 주막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부마는 홍엽을 데리고 멀리 도망쳐 종적을 감췄다.
구월산으로 스며들었다느니 명나라로 갔다느니 소문만 무성했다.
김용임 / 초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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