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백마 쇼'
예전 초·중학교 주변 서점을 주름잡던 참고서 표지에는
백마(白馬) 탄 나폴레옹 그림이 실려 있었다.
앞발을 치켜든 백마 위에서 망토를 휘날리며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리는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의 모습은 영웅 그 자체다.
궁정화가의 작품인 이 그림은 진취적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시켜
나폴레옹의 인기를 높이는 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실제로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을 때 탄 것은
크고 역동적인 백마가 아니라 작은 노새였다고 한다.
대부분의 백마는 회색 말이 나이가 들면서 하얀 털이 많아진 것으로,
자연적인 백마는 매우 드물다.
이 때문에 새하얀 갈기를 휘날리는 백마는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물(靈物)로 대접받았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는 백마가 하늘로 올라간 자리에
- 남겨진 알에서 태어났고,
서양 신화에서 힘과 순결의 상징인 유니콘은 하늘을 나는 백마의 모습이다.
왕자나 기사(騎士)도 늘 백마를 타고 등장한다.
근대 들어서는 절대 군주나 전쟁 지휘자들이 주로 백마에 올랐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히로히토 일왕은
- '눈보라(후부키·吹雪)'라는 이름의 백마를 탔다.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 '사막의 여우'로 불린
- 독일 롬멜 장군이 백마를 탄 사진도 남아 있다.
1945년 6월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린 소련군 승전기념식에서는
스탈린 대신 전쟁 영웅 주코프 장군이 백마에 올라 군 사열을 했다.
백마가 앞발을 들고 일어나 스탈린이 타지 못했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엊그제 북한 매체가 김정은이 백마를 타고
- 백두산에 오른 사진 여러 장을 공개했다.
회색 털이 섞여 있는 다른 간부들의 말과 달리 김정은 말은
눈처럼 하얗고, 화려한 별 장식까지 달려 있다.
북은 3대에 걸쳐 백마를 소위 '백두 혈통'의 상징물로 삼아 왔다.
김일성·김정일이 백마를 타는 그림은 북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김일성이 백마를 타고 전장을 누비며 항일운동을 했다고 선전하는가 하면,
김정일을 위해선 '장군님 백마 타고 달리신다'라는 찬양 가요도 만들었다.
21세기에 말 타고 산에 오르는 시대착오 쇼가 북한 말고
- 세계 어느 나라에서 가능할까.
북 매체들은 백마 위 김정은을 향해 "위대한 사색의 순간"이니
"세상이 놀랄 웅대한 작전이 펼쳐질 것"이니 하며 우상화에 나섰다.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등으로 북한의 정상 국가화가
-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관측이 있었으나
백마 쇼는 모든 게 사기극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북한과 함께 코리안이라 불린다는 것이 정말 부끄럽다.
글 / 조선일보 임민혁 논설위원
Lesiem / Justi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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