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는 江戶時代 中期에 있었던 有名한 歷史 実話 元祿赤穂事件 의 일부를 歌詞化한 노래로, 元祿14年 陰3月14日 (1701年4月21日) 播州 赤穂藩主 浅野內匠頭長矩 가 高家旗本 吉良上野介義央과의 원한 관계로 江戶城 殿中(宮中)의 < 松の廊下 > 에서 吉良上野介 를 殺害 하려다 얼굴과 등에 상처를 입힌 事件으로...
(宮中 新年 行事 관계로 上官이던 吉良가 시골성주 浅野 에게 은근히 뇌물을 바치도록 압력 을 加 하나 성격이 강직한 浅野가 이에 응하지않자 吉良가 浅野에게 행사 일정도 알려주지 않아 차려입어야 할 복장도 차려입지 않은 浅野에게 <시골 무사 주제에> 라고 비하 하는 말에 격분해서...)
浅野内匠頭가 宮內에서는 절대로 칼을 뽑아서는 안된다는 <殿中拔刀の罪>를 지었다는 죄목으로 当日 切腹(할복)하여 죽게되고, 赤穂藩은 몰수되어 새주인에게 넘겨지게 되는데,
이때, 赤穂藩 遺臣(家臣)과 部下들은 죽은 藩主 浅野의 원수를 갚아주기로 굳게맹세하고 뿔뿔이 흩어져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비밀리에 무기를 모으면서 절치부심 복수 할 날을 기다 기다리던 중...
元祿15年 陰12月14日(1703年1月30日)深夜에 前 赤穂藩 家臣 大石內蔵助良雄 을 筆頭로 47名의 武士 (後에 이들을 赤穂浪士 로 부르게됨) 들이 吉良 의 저택으로 침입하여 前 藩主 浅野가 살해 하려다 失敗한 吉良上野介와 그의 경호원, 家人들을 살해하여 복수하는 과정을 歌詞化 한 노래임.
이들 47명의 武士들은 곧바로 現 東京都 目黑区의 泉岳寺로 들어가서 上部의 처분을 기다 리고, 일본 사회는 <이들을 살려야 한다>와 < 죽여야 한다>는 여론으로 갈렸으나 결국은 이들을 切復(할복) 자결케 하기로결정 모두 할복자결하였고, 泉岳寺 에 이들의 묘가있으며, 이 절에서는 지금도 매년 습격이 있었던 날 이들을 기리기 위한 義士祭 가 열린다함.
赤穂藩 家臣은 300余名이었으나, 47名의 家臣만이 복수에 참여하게 되고 나머지 250余名은 참여하지 않아, 참여하지 않은 家臣들은 사건후에 사회적으로 냉대를 받았고, 47名의 赤穂 浪士의 유족들은 여러 성주들의 호의적인 지원을 받았다하며, 浅野 와 吉良 간의 원한 원인등 이와 관련된 다른 이야기들은 後에 기회가 되면 다시 說明 하겠습니다.
忠臣蔵 大石內藏助 作詞:木下竜太郎 作曲:宮下健治 한글토,韓譯 : chkms
唄 - 鏡五郞
음원 & 가사 제공 : 헉핀노래방 (cafe.daum.net/huckfinn)
*마쓰노 로오카노 닌죠오오 *松の 廊下の 刀傷を *<마쓰노 로오카>의 칼부림을
쿠니에 시라세루 하야비 캬쿠 国へ 知らせる 早飛脚 고향에 알려주는 긴급 파발꾼
토노니 쥰지테 셉푸쿠카 展に 殉じて 切腹か 主君에게 몸바쳐 할복 자살 할까
시 로 오 와타시테 로오노 미카 城を 渡して 浪の 身か 성(城)을 넘겨주고 방랑자 신세 될것인가
유 레 루 카쥬우오 마에니 시테 搖れる 家中を 前にして 흔들리는 家臣들을 앞에 놓고
히토리 시 안 노 *쿠라노쓰케 ひとり 思案の *內蔵助 혼자서 고민하는 *<쿠라노 쓰케>
* 松の廊下 = 江戶城內에 있던 全長 50m, 幅 4m 정도의 廊下(複道)로 複道를 따라가며 옆으로 소나무 와 많은 새 그림이 그려져 있어 松の廊下 로 불려졌던 廊下. ( 아래 松之廊下 모형 사진 및 유적지 비석 사진 참고 바랍니다 ) 위의 松の廊下 (松之廊下) 사진은 옛모습의 모형 사진이고, 없어진 자리에 세워진 유적 비석 사진
* 內蔵助 = 赤穂浪士 47名 의 우두머리 大石內蔵助良雄 을 말함.
---------------------------------------------------- 토노니 츄우세쓰오 치카이 한노 유쿠스에오 우레우 오노오노카타노 殿に 忠節を 誓い 藩の 行末を 愁う 各々方の 主君에게 충절을 맹세 城의 장래를 걱정하는 여러분들의
고신테이 시카토 미사다메 모오시타. ご心底 しかと 見定め 申した. 마음속을 확실히 確定해 말씀드렸다.
후타고코로나키 쇼오코노 켑팡 오시타루 二心なき 証拠の 血判 押したる 딴마음갖지않는 증거로 血書署名 찍었다
렌판죠오토 오노오노 카타노 오이노치와 連判状と 各々方の お命は 連 判 狀 과 여러분들의 목 숨 은
*아카호항 *죠오다이 가로오 오오이시 쿠라노쓰케 요시타카 *赤穂藩 *城代家老 大石內蔵助良雄 *<아카호>번 *城主代理 <오오이시 쿠라노쓰케 요시타카>
시카토 오아즈카리 모오스 しかと お預り 申す 분명히 맡아간수함을 고한다
* 赤穂藩 = 播州의 城 이름. 맨 위에 있는 설명 참고 바랍니다.
* 城代家老 = 江戶時代 大名(城主) 不在中 그 城을 맡아 지켰던 직책 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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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와 즈 카타라즈 무네노 우치 問わず 語らず 胸の 内 묻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는 마음 속
쓰마니 모타 세타 리엔죠오 妻に 持たせた 離縁状 妻에게 맡겨 놓은 離緣狀
히 토 노 소시리오 세니 우케테 他人の 謗りを 背に受けて 사람들의 비난소리 못들은 체하고
*쿠루와 카요이노 *슈모쿠쵸오 *廓 通いの *撞木町 *유곽을 드나드는 *<슈모쿠쵸오>
우쓰쓰 누카스모 야가테 나스 うつつ 抜かすも やがて 成す 미쳐서 얼이빠져도 때가되면 이룬다
히 메 타 타이시노 카쿠레미노 秘めた 大志の 隱れ蓑 속에숨긴 큰뜻의 위장 생활
* 廓 = 遊廓 = 공창, 매춘부들이 있는곳.
* 撞木町 = 江戶時代 京都 伏見道의 遊廓이 설치되었던 거리 이름으로, 元祿期 隱居 生活을 하던 大石內蔵助가 일부러 위장생활 하기 위해 드나들 었다는 매춘부들이 있던 사창가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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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후쿠 이치넹 짓카게쓰 나키 토노노 아다오 우쓰히가 雌伏 一年十カ月 亡き 殿の 仇を 討つ日が 때를기다리기 1년10여개월 돌아가신 主君의 원수를 갚을날이
쓰이니 마잇타. 遂に 参った. 드디어 왔다.
코레요리 키라테이에 우치이리 이타스 これより 吉良邸へ 討入りいたす. 이제부터 <키라>저택으로 쳐들어간다
노가레루 모노와 *오오베 가라즈 逃れる 者は *追うべがらず, 빠지겠다는 사람은 *붙잡지 않는다,
하무쿠우 모노 노미 키리 스테요, 刀向う 者のみ 斬り 捨てよ, 맞 서 는 놈 만 은 베어 버려라,
메자스와 키라우에노스케 토노노 미시루시 타다 히토쓰 目指すは 吉良上野介殿の 御首 ただひとつ. 노리는것은 <키라우에노스케>의 머리 오직 하나.
야마토 카와노 아이 코토바오 와스레즈 山と 川の 合言葉を 忘れず <山 과 江>의 암 호 를 잊지말고
오노오노 카타 존분니 오하타라키 메사레이 ! 各々方 存分に お働き 召されい ! 여 러 분 들 가차없이 활 동 해 주 십 시 요 !
* 追うべがらず = 이말은 앞뒤 문장에 따라 그 의미가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여기 에서는 <가겠다는 사람 아쉽지만 굳이 붙잡지는 않겠다> 는 뜻. 例文 : なくした恋は追うべがらず. * 참고 : 赤穂藩 家老 大石内蔵助 가 家臣들을 모아놓고 大石內蔵助 스스로 손가락 피로 連判狀에 血印하고, 家臣들에게서 등을돌려 눈을감고 앉아 당부한 말, (1) 家老 大石의 뜻을 따를수 없는 사람은 이자리에서 떠나라. (2) 떠나는 사람에게는 이유를 물어보지 말아라. (3) 떠나는 사람을 눈여겨 바라보지 말고, 붙잡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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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노노 고무넹 하라스 타메 殿の ご無念 晴らすため 主君의 원통함 풀어 드리기 위해
부시노 이치분 타테루 타메 武士の 一分 立てるため 무사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
유키오 후미시메 키라 테이에 雪を 踏みしめ 吉良邸へ 쌓인눈 단단히밟으며 <키라>저택으로
아코호 로오시가 시쥬시치 赤穂浪士が 四十七 <아코호로오시>가 47名
코요이 우치이리 오오이시가 今宵 討入り 大石が 오늘밤 침입 <오오이시>가
우쓰와 야마가노 진다이코 打つは 山鹿の 陣太鼓 치겠다 <야마가>의 신호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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