忠臣藏-堀部安兵衛 作詞 : 木下竜太郞 作曲 : 弦哲也 한글토,韓譯 : chkms
唄 - 적송님 (솟대工芸家,書芸家)
* 이 노래의 주인공 忠臣蔵-堀部安兵衛 의 본명은 中山武庸 으로 어머니가 武庸 을 낳은 직후 (1670年5月) 사망, 외조모가 맡아 길렀으나, 외조모 사망후 아버지 밑에서 자라다가 아버지가 櫓 (망루) 失火 책임으로 藩 에서 쫓겨나서 浪人生活 로 떠돌다가 사망하고 그후 누나가 데려다가 19세까지 키웠음.
元禄 元年(1688) 19세때 堀内正春 道場에 入門, 타고난 武術로 두각을나타내, 道場의 四天王이라 불리고, 여러 大名城主의 出張修練 要請이 쇄도하여 수입이안정되었으며, 現 新宿区 納戶町에 단독주택도 마련하게 됨.
그후 堀内正春 道場時節 叔父-조카 儀를맺은 菅野六郞左衛門과 村上庄左衛門과의 결투 (高田の馬場) 에서 菅野를 도와, 혼자서 세사람을 베고, 그 이야기가 江戶 의 評判이되어, 赤穂家臣 堀部金丸의 壻養子로 들어가게 되고, 나중에 姓 을 中山 에서 妻家의 姓인 堀部로 바꾸어 堀部 安兵衛 가 됨.
이 노래는 高田の馬場 결투에서부터 赤穂47士가 城主 浅野의 원수 吉良을 처단하기 까지를 歌詞化 한 노래임. 赤穂47士 說明은 이노래 맨 아래에 붙여놓았으니 참고바랍니다. (註: 訳者 -chkms-)
------------------ 세 리 후 -------------------
「우 이... 아 아 요 오 타 요 오 타. 코레와 *오 지 우 에 카 라 노 「ウィ... あ あ 酔うた 酔うた. これは *叔父 上 か ら の 「우 이... 아 아 취 한 다 취 해. 이것은 *아 저 씨 로 부 터 의
오테가미카. 나니나니 *혼쥬우이치니치 미노 게고쿠 *타카 다노 바바 니데 お手紙 か. 何 々 *本十一日 巳之 下刻 *高田の 馬場にで 편 지 인 가. 뭐 라 고 *이달11일 오전10:20~11시에 *<타카다노바바>에서
*무라카미 쇼오 자에 몬토 하타시 아 이 나니토조 고 죠 세 이 오... *村 上 庄 左 衛 門 と 果 し 合 い 何と ぞ ご 助 勢 を... *<무라카미쇼오자에몬>과 결 투 라 어떻게든 도 와 야 지...
에 에ㅅ. 바 쌍 이마. 난 도 키 다 아 ! 」 ええっ. 婆さん 今, 何 時 だ ぁ !」 에 에ㅅ. 할 머 니 지금, 몇 시 야 !」
* 叔父 = 中山 (後에 堀部)가 道場修練時 친하게 지내면서 조카-숙부 인연을 맺었던 道場의 同門 菅野六郎左衛門 임.
* 本十一日 巳之 下刻 = 元祿七年 (陰)2月11日(1694.3.6) 巳之(9~11時사이)의 下刻 (2시간을 40分씩 3번으로 나누어 上刻/中刻/下刻으로 나눔) 즉 10 時 20分 ~ 11 時 사이를 뜻함
* 高田の馬場 = 年始振舞時 菅野六郎左衛門와 村上庄左衛門이 서로 論爭이 있었으나, 처음 에는 서로 술잔을 나누며 화해했으나, 後에 이 論爭이 원인이 되어 高田の馬場 (現 新宿区 西早稻田)에서 결투 하기로 정하고 1694.3.6. 결투한 장소.
참고: 결투를 결정한후 菅野 쪽은 겨우 2人인데, 반대 村上 쪽은 3兄弟를 포함 6-7人 모일거라는 말이 들려와, 菅野가 堀内道場의 門弟로 숙부-조카 의를맺은 劍客 中山安兵衛(後에 妻家 쪽 姓으로 堀部武庸 / 堀部安兵衛)에게 "자기가 죽게되면 妻子를 맡아 代를이어 원수를 갚게해 달라"는 부탁서한을 보내고, 편지를 받은 堀部 安兵衛 (中山 安兵衛)는 "사정을 잘 알았다"고 하고는 "지금 아저씨와 함께 나서겠다" 고 하면서 결투장소 로 갔으며, 이 결투 에서 결국은 양쪽 모두 죽고 오직 堀部 安兵衛 (中山 安兵衛)만 살아남게되고, 이 이야기는 당시 江戶의 評判이되어 後에 中山 安兵衛 가 赤穂藩의 堀部 金丸 의 壻養子가 되고, 그후 赤穂四十七士로 자결하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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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데 오 쿠 레 와 토 라 나 이 가 剣 で 遅 れ は 取 ら な い が 劍 術 은 남 에 게 뒤 지 지 않 으 면 서
사 케 데 후 카 쿠 오 토 로 오 토 와 酒 で 不 覚 を 取 ろ う と は 술 로 방 심 하 여 실 수 를 한 대 서 야
오 지 노 스 케 다 치 *야 스 베 에 가 叔 父 の 助 太 刀 *安 兵 衛 が 아 저 씨 의 助 力 者 *<야 스 베 에>가
노 무 와 노 무 와 요이 자메 히 샤 쿠 미 즈 呑 む は 呑むは 酔 覚 め 柄 杓 水 마 십 니 다 마 셔 요 술 을 깨려는 바가지 물
타 카 다 노 바 바 에 히 타 하 시 리 高 田 の 馬 場 へ ひ た 走 り <타 카 다 노 바 바>로 내 달 리 네
* 安兵衛 = 堀部安兵衛 (이 사람 어려서 본래 姓은 中山이고 결혼후 妻家 姓을 따라 堀部, 이름도 武庸, 安兵衛 等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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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오 리 스 가 리 노 무 스 메 고 니 通 り す が り の 娘 御 に 지 나 가 는 길 의 아가씨 에게서
카 리 타 *시 고 키 오 *타 스 키 가 케 借 り た *扱 帯 を *たすき 掛 け 빌 린 *허리끈으로 *어 깨 띠 묶 고
미 고 토 오 지 고 노 아 다 오 우 쓰 見 事 叔父御の 仇 を 討 つ 장 하 게 아 저 씨 의 원 수 를 갚 아
아카이 시 고 키 가 엔 무 스 비 赤 い 扱 帯 が 縁 結 び 빨 간 허 리 끈 이 인 연 맺 네
쿠 도 키 오 토 사 레 *아 코 오 항 口 說 き 落 と さ れ *赤 穂 藩 끈질긴 설득 이기지 못해 *<아 코 오> 번
*호 리 베 노 이에노 무코토 나리 *堀 部 の 家 の 婿と なり *<호 리 베> 집안의 사위가 되여
우 마 마 와 리 야쿠데 *니 햑 코 쿠 馬 回 り 役 で *二 百 石 경호 기마무사 역으로 *벼 이백석 토지
* 扱帯 = しごき 는 扱き帯(しごきおび)의 줄임말로, 여자가 자기 신장보다 긴옷을 키에 맞추어 입기 위해 남은 부분을 추켜올려 매는 띠 (헝겊 허리끈). 일본여자 옷은 신장보다 길어서 입을 때 자기 키에 맞게 추켜올려서 허리속에서 끈으로 묶어 맴. 이 끈은 대부분 붉은 색 허리끈 임.
* たすき = 민첩한 행동에 거추장 스러운 일본옷의 넓은부분을 깡똥하게 걷어올려 어깨와 겨드랑 밑으로 돌려 매는 어깨띠.
* 赤穂藩 = 이 노래 맨 아래 <참고사항> 赤穂47士 說明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 堀部 = 赤穂藩 의 家臣 堀部金丸 로, 後에 中山安兵衛(武庸)의 장인이됨. 이 堀部金丸 가 中山 安兵衛(武庸)를 壻養子로 삼기위해 끈질기게 설득을 하나, 원래 姓 <中山>을 그대로 쓰겠다는 조건 (나중에 妻歌의 姓 <堀部>로 바꾸게 됨) 을 붙여 堀部의 壻養子로 들어감.
* 二百石 = 벼 二百石을 수확 할 수 있는 武士에게 주는 土地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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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야지도노 타토에 신잔모노 다토테 로쿠오 우 케 레 바 「*親 父 殿 たとえ 新参者 だとて 碌 を 受 け れ ば 「*아 버 님 비 록 신 참 자 라 도 녹 을 받 는 다 면
아 코 오 한 시. 赤 穂 藩 士. <아코오> 번의 무사.
*마쓰노 로오카데노 토 노 노 고 무 넹 하 라 스 노 나 라 바 *松の 廊下で の 殿 の ご 無 念 晴らすの な ら ば *<마쓰노 로오카>의 城主가 당한 원통함을 풀어드리기 위함이라면
*렌반죠오노 오야지도노노 소노 요코니 야스베에 니모 *連判状の 親 父 殿 の その 横 に 安兵衛 にも *연 판 장 의 아 버 님 의 그 옆 에 <야스베에> 도
오 사 세 테 쿠 다 사 레 켓 팡 오.」 押さ せて くだ され 血 判 を」 쓰 도 록 해 주 십 시 오 혈 서 를.」
* 親父殿 = 安兵衛가 自己 장인인 赤穂家臣 堀部金丸를 아버님 이라 부름.
* 松の廊下 = 赤穂城主 <浅野>와 또 다른 城主 <吉良>간에 칼부림이 있었던 궁중의 복도 이름. 이 사건으로 <浅野>는 宮中拔刀의 죄목으로 사건 당일 억울한 할복자결로 죽게됨.
* 連判状 = 위의 <松の廊下>사건으로 <억울하게 죽은 성주의 원수를 갚자는> 赤穂藩 무사들의 결의에 血書로 서명한 결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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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난 싱 쿠 노 쿠 레 시 와 스 艱 難 辛 苦 の 暮 れ 師 走 몹 시 힘 든 고 생 저물어가는 섣달
야 ㅅ 토 우 치 이 리 *키 라 야 시 키 やっ と 討 入 り *吉 良 屋 敷 비 로 소 쳐들어간다 *<키라>의 저택
카 지 쇼 오 조 쿠 노 소데 구치니 火 事 装 束 の 袖 口 に 소 방 대 원 복 장 의 소맷 부리에
호 리 베 호리베 야스 베에 타 케 쓰 네 토 堀 部 堀 部 安 兵 衛 武 庸 と <호리베> <호리베 야스 베에> <타케쓰네>라고
쓰 즈ㅅ타 사라시가 아이 지루시 綴 っ た 晒 が 合 印 써 붙 인 표 시 가 우리편 표 시
* 吉良屋敷 = 궁중에서 年始行事를 책임을 맡은 <吉良>城主가 자기의 지시를 받아야 될 赤穂城主 <浅野> 에게 자기에게 뇌물을 바칠것을 은근히 압박 하나, 성격이 강직한 <浅野>가 뇌물을 바치지않는것에 앙심을품고, 행사일정도 알려주지않아 행사에갖추고 나가야할 복장도 입지 못해 창피를 주는등 상급자로 행패를 하다가, <松の廊下>에서는 <시골뜨기 武士 주제에...>라고 멸시한데 격분한 <浅野>가 칼을 뽑아 <吉良> 얼굴과 어깨등에 상처를냈고, 宮內에서 칼을뽑아서는 안되는 궁중에서 <浅野>가 칼을뽑았다는 <宮中拔刀>의 죄목 <浅野>를 할복 자결케하여 죽게한 사람 <吉良>가 살고있는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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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리 카타비라 쿠 로 코 소 데 * 鎖 帷 子 黒 小 袖 *쇠 사 슬 홑 옷 검은 좁은 소매옷
아이 토오 슈 자 야 노 오오다치오 愛 刀 朱 鞘 の 大 太刀を 愛 刀 주홍색 칼집의 큰 칼을
사 시 타 코시 니와 쿠사리 오비 差 し た 腰 に は 鎖 帯 차 고 있 는 허리에는 쇠사슬 허리띠
카부토 즈 킨 노 소노 나 카 냐 兜 頭 巾 の その 中 にゃ 투 구 와 두 건 의 그 속 에 는
뇨오보오 오 코 오 노 쿠로 카미오 女 房 お 幸 の 黒 髪 を 마 누 라 <오코오>의 검은 머리를
이 레 타 이노치노 마모리 후다 入 れ た 命 の 守 り 札 넣 은 생 명 의 부 적 (符籍)
요와이 나나 쥬우 나나 사이노 齡 七 十 七 才 の 나 이 일 흔 일 곱 살 의
슈우토 야 베 에 노 아토오 오 이 舅 弥兵衛の 後 を 追い 장 인 <야베에>의 뒤 를 따 라
유키오 후 미 시 메 야스 베에 가 雪 を 踏 み し め 安 兵 衛が 눈 을 힘주어 밟으며 <야스베에>가
사 ㅅ 사 ㅅ 사 ㅅ 사 ㅅ 사 사 사 사 토 さっ さっ さっ さっ さ さ さ さ と 삭 삭 삭 삭 사 사 사 사 하며
메 자 스 와 *혼 죠 마쓰자카쵸오 目指 すは *本 所 松 坂 町 향 해 가 는 *<혼죠 마쓰자카 쵸오>
* 첫머리 「鎖帷子~~~~ 에서 넷째줄 ~~~兜 頭巾」부분은 武士 복장을 입고있는 모습을 이야기 하고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 本所 松坂町 = 元祿赤穂事件으로 有名한 <吉良義央>이 살고있는 邸宅을 말하며. 現在는 東京都 墨田区의 한 公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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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 베 에 야스베에 켕카야스노 야 스 베 에 가 키라도노 「*呑んべぇ 安 兵 衛 喧嘩安の 安 兵 衛 が 吉良 殿 「*술마셨겠지 <야스베에> 싸움잘하는 <야스 베에>가 <키라> 님
아이테노 사이고노 오 오 켕 카. 쟈 마 다 테 스 루 모노 아 라 바 相手の 最後 の 大 喧 嘩. 邪魔 立てする 者 あ ら ば 상 대 로 마 지 막 큰 싸 움. 방해 하고 나서는 놈 있 다 면
요 오 샤 와 세 누. 이자 이자 마이루」 容 赦 は せ ぬ. いざ いざ 参 る.」 용 서 하 지 않 아. 자 자 나간다.」
* 呑んべえ = <...べぇ> 는 <...だろう> 의 관동지방 사투리 로 <~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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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강 이치넹 쥬우카 게쓰 悲 願 一 年 十 ケ 月 비원(悲願) 일 년 십 개 월
아다와 키 라 도 노 타 다 히 토 리 仇 は 吉 良 殿 ただ ひ と り 원수는 <키 라> 님 오 직 한 사 람
야 마 토 카와토노 아이 코토바 山 と 川との 合 言 葉 산(山)하면 강(川) 이 암 호 (暗号)
코에오 코에오 카 케 아 이 야 스 베 에 가 声 を 声 を 掛け 合い 安 兵 衛 が 목소리 목소리 주고받으며 <야스베에> 가
후 루 우 와 슈 자 야 노 나가 가타나 振 う は 朱 鞘 の 長 刀 휘 두 르 는 주홍색칼집 긴 칼 (長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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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사항: 赤穂47士 = 江戶時代 中期에 있었던 有名한 歷史 実話 元祿赤穂事件: 元祿14年 陰3月14日 (1701年4月21日) 播州 赤穂藩主 浅野 內匠頭長矩 는 高家旗本 吉良 上野 介義央가 은근히 뇌물을 받치도록 압력을 가했으나, 성격이 강직했던 浅野는 이에 응하지 않 았고, 吉良는 심지어 浅野에게 <시골 武士 주제에> 라는 치욕적인 말을한데 浅野가 분개해서 江戶城 殿中(宮中)의 <松の廊下>에서 吉良를 殺害 하려다 얼굴과 등에 상처를 입힌 事件으로... 浅野 内匠頭가 宮內에서는 절대로 칼을 뽑아서는 안된다는 <殿中拔刀の罪>를 지었다는 죄목 으로 当日 切腹(할복) 죽게하고, 赤穂藩은 몰수되어 새주인에게 넘겨지게 되는데...
이때, 赤穂藩遺臣과 部下들은 억울하게 죽은 藩主 浅野 의 원수를 갚아 주기로 굳게맹세하고 뿔뿔이 흩어져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비밀리에 무기를 모으면서 절치부심 복수할 날을 기다리던 중... 元祿15年 陰12月14日(1703年1月30日) 深夜에 前 赤穂藩 家臣 大石內蔵助良雄 을 筆頭로 47名의武士 (後에 이들을 赤穂浪士로 부르게됨)들이 吉良의 저택으로 침입하여 前藩主 浅野가 살해 하려다 失敗한 吉良上野介와 그의 경호원, 家人들을 살해하게됨.
▲ 兵庫県(赤色部分) ▲ 兵庫県
▲ 赤穂市 ▲ 赤穂城 이들 47명의 武士 들은 곧바로 現 東京都 目黑区 의 泉岳寺 로 들어가서 上部의 처분을 기다 렸고, 일본사회는 <이들을 살려야 한다>와 <죽여야 한다>는 여론으로 갈렸으나, 사건 두달후 이들을 切復(할복) 자결케 하기로 결정, 모두 할복 자결 하였고, 泉岳寺 에 이들의 묘가있으며, 이 절(寺)에서는 지금도 매년 습격이있었던 날 이들을 기리기위한 義士祭가 열린다함.
赤穂藩 家臣은 300余名이었으나, 47名의家臣만이 복수에 참여하게되었고, 나머지 250余名은 참여하지 않았다함, 참여하지 않은 家臣들은 사건 후에 사회적으로 냉대를 받았고, 47名의 赤穂 浪士의 유족들은 여러 성주들의 호의적인 지원을 받았다함. -以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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